여행인가

231226 강화도에 다녀왔다

escape_route_ 2023. 12. 26. 13:34

강화도에 도착해서 알았다.

내가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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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강화도는 고요하다. 그리고 또 의외로 그렇지도 않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후기로 풀어보려 한다.

합정에서 3000번 버스를 타고 강화도에 들어와 버스에서 내렸을 때, 마침 날이 맑았다. 그만큼 추웠다. 마스크가 없는 코와 입에 찬 공기가 닿는것이 지난 2년간 어색해졌다. 이 때의 공기는, 스무살즈음에 친구들과 처음으로 갔던 순천이나 경주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공기였다. 그리고 차근차근 처해진 상황을 받아들였다. 아,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 

혼자서 여행을 제법 다니는 편이었다. 친구들과는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또 불쑥불쑥 혼자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런데 요상하게도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홀로 떠나는 여행의 빈도수가 줄어들었다. 대게는 주위로부터 어딘가 가자는 요청을 먼저 받기 마련이였고, 그에 응하면서 캘린더에 여행 스케줄을 하나 둘 씩 넣다 보면 대충 주말이 꽉 찼다. 혼자 어디론가 가야지, 란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 무렵, 어딘가 한 구석이 텅 빈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 이제 슬슬 혼자가 되어야지 않나?

아마 올해 하반기에 이런 생각을 더더욱이 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의도적으로 주말이면 서울 내에 산을 가거나 홀로 전시나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 여행을 가야한다. 서울 시내가 아닌, 어디론가로 혼자 떠나야만 한다. 이런 생각을 내내 했었지.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강화도에선 과거에 느꼈던 내면의 고즈넉함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오래된 디카를 들고 있어 더욱 그러했다. 그 시절엔 중고로 산 캐논 450D를 어디에나 들고 다니면서 풍광을 두 눈과 카메라 렌즈에 동시에 담는 일에 열중해있었다. 이 낯선 감각을 최대한 다시 살리려고 집중하는 동안 다시 그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도 느꼈다. 

나는, 멋들어진 여행지보단 그 곳으로 이동하는 동안 여기 저기에 눈길을 주며, 또 그 찰나를 사진으로 담는 일을 참 좋아했었는데. 그랬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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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울로 돌아왔고, 오늘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죽 돌아봤다. 내가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을 카메라로 담기에는 한계가 크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도 이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해묵은 고민을 좀 했었는데, 그럼에도 묵묵히 사진을 찍어오길 잘 했다. 찬 공기를 마시며 너른 벌판 한 가운데에 서 있던 내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왔다.